교육 풍향계

교사를 위한 문장론(1) _ 언어,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

민들레
2021-0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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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라는 화살표

 

언어의 일차적인 목적은 상호간의 소통이다. 꿀벌 같은 다른 사회적 동물도 나름의 의사소통 체계를 갖추고 있다. 꿀벌은 일정한 형식을 갖춘 8자춤으로 꿀이 있는 방향과 거리를 정확하게 전달할 수 있다고 한다. 인간이 꿀벌과 다른 점은 거짓말을 할 수 있다는 점이다. 말하는 사람은 자신의 의도대로 이야기를 지어낼 수 있다. 그리고 듣는 사람 또한 자신이 듣고 싶은 대로 듣기도 한다.

말 전하기 놀이를 해보면 첫 번째 발화자의 말이 몇 사람을 거친 뒤 전혀 엉뚱한 말이 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중간에 누군가가 의도적인 거짓말을 해서가 아니라 말이 전해지는 과정에서 변형되기 때문이다. 대개는 수신 과정에서 변형되지만, 발신 과정에서도 자신이 전하고자 하는 내용을 백 퍼센트 언어로 다 담지 못한다. 말하자면 언어는 발신자와 수신자 사이에 존재하는 제3자 같은 존재다.

언어는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 같은 것이다. ‘저것 봐’라는 언어가 손가락을 대신하게 되면서 손가락의 효용이 줄어들었겠지만, 수십만 년이 지난 오늘날에도 몸짓이 언어를 대신하는 경우는 흔히 있다. 말이 통하지 않는 외국인과 소통할 때만 그런 것이 아니라 일상적인 대화에서도 다양한 몸짓과 표정이 언어의 빈 자리를 메운다. 언어가 갖고 있는 본질적인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언어의 연금술사라 하더라도 자신이 전하고자 하는 바를 말이나 글만으로 백 퍼센트 온전히 전하지는 못한다.

세상 만물이 관계의 존재이듯이, 언어의 의미 또한 사람과 사람의 사이, 언어와 언어의 사이에서 생겨난다. 의미는 단어 속에 있지 않다. 문장의 어떤 맥락 속에서 비로소 의미가 부여된다. 이러한 언어의 속성은 곧 존재의 속성이다. 언어는 본질보다 눈에 보이는 현상을 전하는 방편으로 발달되어왔기에 본질을 표현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도덕경의 첫 구절, 도가도비상도(道可道非常道)처럼 언어의 한계는 일찍부터 인식되어왔다.

흔히 “손가락을 보지 말고 달을 보라”고 말한다. 마치 고개만 들면 휘영청 밝은 달을 볼 수 있는 듯이. 하지만 실제로 달은 숨어 있고 우리 눈에 보이는 것은 손가락뿐이기에, 손가락을 통해서 그것이 가리키는 달(?)을 짐작해야 하는 것이 커뮤니케이션의 현실이다. 부족한 언어로나마 최대한 달을 묘사해내는 것이 가리키는 자의 몫이다. 언어의 핑계를 대는 것은 실력이 부족함을 드러내는 것이다. 양자역학을 기초한 하이젠베르크와 눈 덮인 산장에서 토론하던 중 그의 스승 닐스 보어가 설거지를 하면서 이런 말을 한다.

 

설거지는 언어와 같군. 물도 더럽고 행주도 더럽지만 이걸로 접시를 깨끗하게 할 수 있으니 말이야. 언어도 마찬가지지. 개념이 불명확하고 논리가 적용되는 범위도 뚜렷하지 않지만 이런 언어를 가지고도 자연을 명확하게 이해할 수 있으니까.(하이젠베르크, 『부분과 전체』 가운데)

 

소리가 아닌 문자만으로 의미를 전해야 하는 글은 말보다 더 많은 제약을 안고 있다. 소리의 고저장단이 사라지고 말의 빈고리를 채워주던 몸짓과 표정 없이 글만으로 생각을 전하려면 글이라는 도구에 대해 잘 알아야 한다. 문장 공부가 필요한 까닭이다. 말은 따로 공부하지 않아도 모어를 통해 자연스럽게 습득되지만, 글은 학습과 훈련이 필요하다.(말도 정확히 구사하려면 아나운서가 볼펜을 입에 물고 말하기 훈련을 하는 것처럼 학습과 훈련이 필요하다.)

우리말과 글의 특성에 대해서도 알아야 하지만, 그 이전에 모든 언어가 공유하고 있는 보편적 성질을 숙지할 필요가 있다. 그것은 언어가 애초에 뭔가를 가리키는 손가락을 대신한다는 사실이다. 손가락으로 뭔가를 가리키던 몸짓이 말로 진화하고 그것이 다시 문자화되었다는 것은 말이나 글이 사실상 하나의 화살표라는 얘기다. 이는 다시 말해 말이나 글 속에 방향성이 있다는 것이며, 일정한 패턴을 띠고 있고, 맥락 속에서 의미가 드러난다는 뜻이다. 방향, 패턴, 맥락, 이 세 가지 속성은 사실상 하나의 속성을 다르게 표현한 것이다.

화살표로서의 언어의 속성은 말보다 글에서 더 분명히 드러난다. 좋은 문장은 화살표가 제 기능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모든 문장은 주어부(전제)와 술어부(진술)로 이루어지며, 주어와 술어의 관계는 주체가 지향하는 방향을 드러낸다. 그 속에 핵심 정보가 들어 있다. 그리고 낱말(부분) 속에 의미가 있는 것이 아니라 낱말과 낱말의 관계에 의해 의미가 결정되며, 한 문장의 의미는 다른 문장과의 관계에 의해 결정된다. 맥락, 전체를 보지 못하면 의미를 놓치게 된다. 따라서 문장 공부는 전체를 보는 훈련이자 패턴과 맥락에 대한 감을 훈련하는 일이기도 하다.

 

언어는 주체가 지향하는 방향을 가리킨다

 

모든 언어는 주어-동사 구조로 이루어진다.* 주체의 의도(행위나 상태)를 전달하는 것이 언어의 주목적이기 때문이다. 동사 속에는 방향이 숨어 있다.**  동사가 문장 끝에 오는 우리말의 경우는 주어의 움직임에 주목하는 반면 영어는 주어 다음에 바로 이어지는 동사 자체의 움직임에 주목하는 편이다.(영어에서 동사 뒤에 관용적으로 쓰이는 전치사는 동사의 방향성을 명확히 하는 기능을 한다.) 주어의 움직임을 설명한다는 점은 같다. 그 움직임이 어디서 어디로 향하느냐는 것이 문장의 흐름을 결정한다. 맥락을 읽는 것은 그 방향을 가늠하는 것이다.

하나의 문장은 화살표가 그려진 하나의 표지판이나 다름없다. 어순은 주어의 관심이 진행하는 방향으로 전개된다. 우리말에서는 동사가 맨 뒤에 오다 보니 말이나 문장을 끝까지 확인해야만 의미가 분명해진다. 주어와 동사의 거리가 멀어 주술 관계가 애매해지는 경우도 많다. 주의하지 않으면 자칫 비문을 쓰게 되는 이유다. 화살표가 오락가락하는 것이다.(비문은 화살표가 제 기능을 할 수 없는 상태와 비슷하다.) 게다가 우리말의 경우 주어가 곧잘 생략되기도 해서 주술 관계가 분명하게 드러나지 않을 때가 많다.

수동태 문장은 형식상으로는 주술 관계가 명확하지만, 주어의 주체성이 결여되어 있는 문장이다. 우리말의 경우 피동형 동사가 따로 있어 굳이 영어의 수동태 형식을 빌 필요가 없다. 주어를 쓰지 않더라도 맥락 속에서 주술 관계가 명확히 드러나고, 술어의 방향성이 뚜렷해야 한다. 그러자면 무엇보다 서술어를 잘 구사해야 한다. 우리말에서는 서술어가 대체로 문장 뒤편에 위치하고,*** 가장 많은 정보를 담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말에서 대표적인 서술어는 동사와 형용사다. 사전적 정의에 따르면 동사는 사물의 동작이나 작용을 나타내는 품사이고, 형용사는 사물의 성질이나 상태를 나타내는 품사인데 함께 용언으로 분류된다. 하지만 우리말에서 동사와 형용사의 경계는 애매하다. 둘 다 서술어가 될 수 있고 관형형으로 활용되어 명사를 수식하기도 한다. 한국어는 전통적으로 동사와 형용사를 명확히 구분하지 않았다.(국립국어원은 2017년에 ‘잘생기다’, ‘못나다’, ‘낡다’ 등을 형용사에서 동사로 재분류했다.)

언어마다 품사론이 있지만, 하나의 일관된 기준으로 품사를 명쾌하게 나누기는 힘들다.(그런 점에서 품사‘론’이라 하기는 거시기하다. ‘거시기’처럼 애매하므로.) 품사의 명칭으로 보자면 우리말에서 동사나 형용사는 의미 중심으로 붙여진 명칭이고, 관형사와 부사, 조사는 기능 중심으로 붙여진 명칭이다. 형용사는 동사와 달리 명령형으로 변환할 수 없어 형용사인 ‘건강하다’ ‘행복하다’를 ‘건강하세요’ ‘행복하세요’ 등으로 쓰는 것은 어법상 맞지 않지만 일반적으로 쓰고 있다. 사실상 동사처럼 쓰는 셈이다.

영어에서 동사(verb)는 의미보다 기능과 형태적 특징을 기준으로 분류한 것으로, 사람이나 사물의 동작이나 상태를 서술하는 역할을 하면서 인칭이나 시제에 따라 형태가 변한다. 영어에서 형용사는 be동사 도움 없이 그 자체로는 서술어가 될 수 없지만,***** 한국어에서는 형용사도 그 자체로 서술어가 될 수 있고, 활용 어미가 붙는 점에서 동사와 쓰임새가 비슷하다. 또 영어에서는 형용사가 바로 명사를 수식하는데 비해 한국어에서는 관형사형 어미(-ㄴ)를 동반해야 한다(예: 높다 ->높은, 빠르다 -> 빠른). 이는 동사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문맥의 기본은 주부와 술부의 관계다. 나아가 문장과 문장, 문단과 문단의 관계로 이어진다. 거기에 방향성이 있다. 에너지의 입력부가 있고 출력부가 있다. 좋은 문장, 좋은 글은 방향성이 분명하다. 물론 그 표현이 단순하지 않고 난해한 고차방정식 같은 경우도 있지만, 제대로 된 방정식이라면 해가 존재하기 마련이다. 그 문장을 쓴 사람은 적어도 자신의 방정식을 제대로 알고 있어야 한다. 독자에 따라 그 해를 달리 구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지만, 그것은 또 다른 문제다.(일반 언어가 수학적 언어와 다른 점은 수신자에게 해석의 여지가 열려 있다는 점이다.)  _계속


*  한국어는 영어와 달리 주어가 곧잘 생략되기도 하고 동사(서술어)가 주어와 멀리 떨어져 있지만 주어-동사 구조에서 벗어나는 것은 아니다.

**  영어에서는 그 방향을 선명하게 해주는 것이 전치사의 역할이다. 전치사가 방향성을 나타낸다는 사실 한 가지만 분명히 이해해도 영어를 이해하기가 한결 수월하다.(ex: He walked by me) 동사를 독립된 낱말로 이해하기보다 전치사와 함께 숙어 형태로 이해해야 하는 까닭이 여기 있다.

***  서술어가 문장 앞쪽에 오는 경우는 ‘도치법’이라고 해서 특별한 문장구조로 취급한다.

****  서술어는 형용사, 명사, 수사 등을 동사화하고(‘하’시었나이다), 높임법(하‘시’었‘나’이다), 시제(하시‘었’나이다), 종결어미(하시었나이‘다’)와 아울러 문체(‘하시었나이다’)를 확정짓는다.

*****   be동사는 우리말의 서술격 조사 ‘이다’에 해당하므로, 의미로 따지면 성질이나 상태를 나타내는 형용사에 더 가까운데 동사로 분류하는 까닭은 서술 역할을 하면서 인칭이나 시제에 따라 형태가 변하기 때문이다.


현병호(『민들레』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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